조용한 선의
권주영 님 | 서울시 서대문구
매서운 추위에 몸을 꽁꽁 싸매고 퇴근길 버스를 탔다.
운전석 뒷자리에 앉아 있는데, 다음 정거장에서 한 초등학생이 급하게 올라탔다. 버스를 놓칠까 봐 헐레벌떡 달려왔는지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그러고는 기사님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후 한 정거장을 채 가기도 전에 근처에서 갑자기 푸르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창가에 하얀 가루가 날리는 것이 보였다. 아이가 버스 소화기 근처에 기대면서 안전핀이 가방에 걸려 뽑힌 것이었다.
여러 사람이 가루를 뒤집어썼고 버스 기사님이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정류장에 멈춰 섰다. 아이가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실수할 수도 있지."
"괜찮아."
가루를 맞은 사람들은 딱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떤 이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에게 뒤로 가라고 말해 줬다.
누군가 함께 치우자며 내게 물티슈를 건넸다. 기사님은 묵묵히 바닥을 대걸레로 닦았다.
오늘날 매체에는 ‘개초딩’, ‘꼰대’, ‘헬조선’같이 사람들과 세상을 조롱하는 말이 넘쳐난다. 그러나 이날 버스 안에는 그런 것은 없었다.
대신 공손하게 사과하는 아이와 그를 감싸는 어른, 묵묵히 서로를 돕는 이들만이 있었다.
대부분은 이렇듯 적당한 친절함을 갖고 산다. 시끄럽게 떠드는 목소리가 전부인 것 같지만, 조용한 선의는 뉴스에 나오지 않을 뿐이다.
다 함께 버스를 깨끗이 정리하고 다시 의자에 앉아 창문을 열었다. 차갑고 상쾌한 바람이 마음에 오래 머물렀다.
-좋은생각 이천이십육년 삼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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