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화 22

비결은 없다, 그게 비결이다

비결은 없다, 그게 비결이다-윤성희 님 | 소설가 소설 《양과 강철의 숲》에는 피아노 조율사인 도무라라는 청년이 주인공으로 나온다.도무라는 열일곱 살에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우연히 피아노 조율하는 광경을 본다.그 찰나의 순간을 그린 문장을 옮기자면 이렇다."그가 피아노 건반을 몇 군데 두드리자 뚜껑이 열린 숲에서 나무들이 흔들리는 냄새가 났다.밤이 흐르고 있었고 나는 열일곱 살이었다."피아노 소리에서 숲의 소리를 듣게 된 뒤 도무라는 조율사의 세계에 빠져든다.하지만 재능과 꿈이 일치하는 경우는 드물어서(혹은 우리 모두 드물다고 생각해서) 도무라 역시 초보 조율사가 되고도 끊임없이 회의를 느낀다.'나는 재능이 있는 건가? 좋은 조율사가 될 수 있을까?'이런 질문들. 그러다 어느 날, 자신을 조율사의 세계에 ..

[훈화] 오늘의 수고

오늘의 수고 매일 아침 정원에 떨어진 나뭇잎을 치우는 아이가 있었다.나뭇잎 치우기는 생각보다 힘들었다.특히 가을, 겨울에는 세찬 바람 탓에 낙엽이 정원을 뒤덮었다. 날마다 시간과 힘을 쏟던 아이는 금세 지쳤다.그래서 어떻게 하면 수고를 줄일 수 있을까 고민했다.'나무를 흔들어서 낙엽을 떨어뜨려 볼까?내일 몫까지 미리 치워 두는 거야.'아이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고 정원에 나가 나무를 세차게 흔들었다.평소보다 치우는 데 시간이 한참 걸렸지만, 내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즐거웠다.하지만 다음 날 정원에 나가 보니 낙엽은 평소처럼 수북이 쌓여 있었다.당황한 아이들 본 현자가 말했다. "얘약, 오늘의 수고는 오늘의 몫으로 충분하다.내일은 내일의 낙엽이 떨어지는 법이란다." -좋은생각 이천십칠년 삼월호 중에서

[훈화] 천 번의 두드림

천 번의 두드림 한 젊은이가 고생 끝에 사업을 시작했다.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갈수록 의기소침해졌다. 그는 기분 전환할 겸 산책을 나섰다가 나이든 석공을 보았다.석공이 망치로 큰 돌을 내려치자 반으로 쫙 갈라졌다.다른 돌 역시 마찬가지였다. 깜짝 놀란 그가 물었다."어르신, 힘이 대단하시네요. 타고난 겁니까, 아니면 비결이 있습니까?" 석공은 껄껄 웃었다."젋은이, 난 평범한 사람이라오."그러곤 돌을 내밀며 자세히 보라고 말했다. 단단한 돌에는 미리 쪼아 놓은 작은 구멍이 여러 개 있었다.어찌나 촘촘히 구멍을 냈는지 꽤 긴 시간을 들인 것 같았다."여보게, 한 번 쳐서 돌이 갈라진 게 아니라네. 갈라지지 않은 천 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네." -좋은생각 이천십칠년 오월호 중에서

[훈화] 기다릴게요

기다릴게요 해 질 녘, 사내 넷이 모이는 '사인방'에 참석하러 집을 나섰다.소한 추위가 지났는데도 바람이 제법 찼다."한 봉지에 삼천 원, 두 봉지에 오천 원! 맛있는 과자가 한 봉지에……."안경 낀 지긋한 남자가 행상 중이었다.장사할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맛있으면 사 갈게요."내게 과자 한 주먹을 주며 맛보라고 했다.공짜라 그런지 맛있었다.그의 순한 눈빛을 바라보며 말했다."이따 일곱 시쯤 다시 올게요."한 주먹 더 얻은 과자를 먹으며 모임 장소로 향했다."기다릴게요!" 등 뒤에서 그의 말소리가 들렸다. 만나면 개구쟁이 소년이 되는 우리 넷.동태탕을 안주 삼아 쭈그러진 잔에 막걸리를 부어라 마셔라 했다.엉뚱한 친구 덕에 거의 삼 분마다 웃음보가 터졌다.일곱 시가 조금 넘어 모임이 끝났다. 집으로 ..

[훈화] 오곡밥과 사위

오곡밥과 사위 대보름을 앞두고 사위가 물었다."오곡밥 안 하세요?" "누가 먹어야 하지. 나 혼자 먹자고 하기도 번거롭고.""먹고 싶어요. 해 주세요."요즘 젊은이들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인데, 객지 생활 하다 보니 고향 밥이 그리웠던 걸까.가족이 된 지 얼마 안 돼 서먹한데도 넉살 좋게 부탁했다.남편과 나는 오곡밥을 좋아했다.커다란 솥에 해서 이웃과 나누고, 냉동실에 두었다가 입맛 없을 때 꺼내 먹기도 했다.그때는 외국산 재료를 썼지만 사위가 해 달라니 좋은 재료에 눈이 갔다.요리하느라 바쁜 와중에 사위가 왔다.아들이라면 마음 쓰지 않을 텐데, 사위가 턱밑에서 기다리니 마음이 분주했다.서둘러 상 차리고 밥 푸려는 순간 사위가 "저 먼저 주세요."라며 남편이 생전에 쓰던 밥그릇을 꺼내 왔다.예의 없다는 생..

[훈화] 직업 정신

직업 정신 회사 다닐 때의 일이다.어느 날 늦잠 자는 바람에 일곱 시 반에 일어났다.출근 시간은 여덟 시인데 말이다. 나는 급히 씻고 콜택시를 불렀다.허둥지둥 택시에 올라 빨리 가 달라고 부탁했다.그러나 아저씨는 규정 속도를 지키며 운행했다. 한창 출근 시간이라 신호를 두세 번 더 기다려야 했고,그럴수록 요금은 올라갔다. '택시비 많이 받으려고 하는구나.'라는 생각에 부아가 났다.아저씨는 신호 대기 중 전화도 받았다.한데 "지금 손님 모시고 운전 중이니 나중에 전화할게요."라고 짧게 말하곤 끊었다.평소 집에서 회사까지는 택시비 5천 원 정도인데, 그날은 7천8백 원이나 나왔다.나는 속으로 불평하며 만 원을 내밀었다. 그러자 아저씨는 5천 원을 거슬러 주며 말했다. "급하신 마음 잘 압니다. 그렇지만 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