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 74

겨울 숲길에서 생긴 일

겨울 숲길에서 생긴 일윤재운 님 | 변호사 지난 연말에 며칠 동안 아내와 함께 충주호 근처의 조용한 동네에서 지냈다.마침 가까운 곳에 '자드락길'이라고 이름 붙인 숲길이 몇 개 있어서 하루에 하나씩 걷기로 하였다.첫날, 차를 몰고 솔숲으로 갔는데 숲이 가까이 갈수록 길이 좁아져서 나중에는 차 한 대만 간신히 지날 정도였다.워낙 외진 곳이어서 주차장도 따로 없었다.길가에 차를 조심스레 세우고 숲길을 한참 걷는데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있었다.우리 부부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부부로, 모두 스틱을 들고 있었다.서로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지나쳤다.새소리만 간간이 들리는, 눈 쌓인 적막한 겨울 숲길을 걷는 기분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두 시간여 걸은 뒤 되돌아왔는데 차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운전석 쪽 차..

비결은 없다, 그게 비결이다

비결은 없다, 그게 비결이다-윤성희 님 | 소설가 소설 《양과 강철의 숲》에는 피아노 조율사인 도무라라는 청년이 주인공으로 나온다.도무라는 열일곱 살에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우연히 피아노 조율하는 광경을 본다.그 찰나의 순간을 그린 문장을 옮기자면 이렇다."그가 피아노 건반을 몇 군데 두드리자 뚜껑이 열린 숲에서 나무들이 흔들리는 냄새가 났다.밤이 흐르고 있었고 나는 열일곱 살이었다."피아노 소리에서 숲의 소리를 듣게 된 뒤 도무라는 조율사의 세계에 빠져든다.하지만 재능과 꿈이 일치하는 경우는 드물어서(혹은 우리 모두 드물다고 생각해서) 도무라 역시 초보 조율사가 되고도 끊임없이 회의를 느낀다.'나는 재능이 있는 건가? 좋은 조율사가 될 수 있을까?'이런 질문들. 그러다 어느 날, 자신을 조율사의 세계에 ..

[훈화] 오늘의 수고

오늘의 수고 매일 아침 정원에 떨어진 나뭇잎을 치우는 아이가 있었다.나뭇잎 치우기는 생각보다 힘들었다.특히 가을, 겨울에는 세찬 바람 탓에 낙엽이 정원을 뒤덮었다. 날마다 시간과 힘을 쏟던 아이는 금세 지쳤다.그래서 어떻게 하면 수고를 줄일 수 있을까 고민했다.'나무를 흔들어서 낙엽을 떨어뜨려 볼까?내일 몫까지 미리 치워 두는 거야.'아이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고 정원에 나가 나무를 세차게 흔들었다.평소보다 치우는 데 시간이 한참 걸렸지만, 내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즐거웠다.하지만 다음 날 정원에 나가 보니 낙엽은 평소처럼 수북이 쌓여 있었다.당황한 아이들 본 현자가 말했다. "얘약, 오늘의 수고는 오늘의 몫으로 충분하다.내일은 내일의 낙엽이 떨어지는 법이란다." -좋은생각 이천십칠년 삼월호 중에서

[훈화] 천 번의 두드림

천 번의 두드림 한 젊은이가 고생 끝에 사업을 시작했다.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갈수록 의기소침해졌다. 그는 기분 전환할 겸 산책을 나섰다가 나이든 석공을 보았다.석공이 망치로 큰 돌을 내려치자 반으로 쫙 갈라졌다.다른 돌 역시 마찬가지였다. 깜짝 놀란 그가 물었다."어르신, 힘이 대단하시네요. 타고난 겁니까, 아니면 비결이 있습니까?" 석공은 껄껄 웃었다."젋은이, 난 평범한 사람이라오."그러곤 돌을 내밀며 자세히 보라고 말했다. 단단한 돌에는 미리 쪼아 놓은 작은 구멍이 여러 개 있었다.어찌나 촘촘히 구멍을 냈는지 꽤 긴 시간을 들인 것 같았다."여보게, 한 번 쳐서 돌이 갈라진 게 아니라네. 갈라지지 않은 천 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네." -좋은생각 이천십칠년 오월호 중에서

진정한 도리

진정한 도리 맹자가 장가든 다음의 일이다.어느 날 아내가 윗옷을 벗고 방 안에 있었다.맹자는 불쾌해하며 자리를 뜬 뒤 아내를 멀리했다.이에 맹자의 아내는 맹모에게 하소연했다."이젠 부부가 되었는데 방 안에서조차 엄격한 예를 갖춰야 합니까. 이는 저를 손님으로 본 것입니다. 아내의 도리를 행해야 할 제가 어찌 손님으로 묵겠습니까. 부모님에게 돌아가기를 청합니다."이에 맹모는 맹자를 불러들여 잘 타일렀다. 얼마 후 맹자는 아내가 품위 없이 쪼그려 앉아 있는 걸 보았다.그는 곧바로 맹모를 찾아갔다."어머니, 아내의 무레함을 용납할 수 없으니 내쫓아 주십시오."맹모는 침착하게 물었다."네 아내가 그렇게 앉아 있는 걸 어찌 보았느냐?""방 안으로 들어서며 보았습니다.""방 안에 들어설 때 인기척을 냈느냐?""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