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생이다!!

[훈화] 기다릴게요

곽성호(자유) 2017. 3. 24. 08:55

기다릴게요


  해 질 녘, 사내 넷이 모이는 '사인방'에 참석하러 집을 나섰다.

소한 추위가 지났는데도 바람이 제법 찼다.

"한 봉지에 삼천 원, 두 봉지에 오천 원! 맛있는 과자가 한 봉지에……."

안경 낀 지긋한 남자가 행상 중이었다.

장사할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맛있으면 사 갈게요."

내게 과자 한 주먹을 주며 맛보라고 했다.

공짜라 그런지 맛있었다.

그의 순한 눈빛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따 일곱 시쯤 다시 올게요."

한 주먹 더 얻은 과자를 먹으며 모임 장소로 향했다.

"기다릴게요!" 등 뒤에서 그의 말소리가 들렸다.


만나면 개구쟁이 소년이 되는 우리 넷.

동태탕을 안주 삼아 쭈그러진 잔에 막걸리를 부어라 마셔라 했다.

엉뚱한 친구 덕에 거의 삼 분마다 웃음보가 터졌다.

일곱 시가 조금 넘어 모임이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득 그 남자 생각이 났다.

그는 어둑어둑한 횡단보다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난 오천 원 한 장을 내밀었다.

"정말 오셨네요!"

안경 너머 그의 눈빛에서 감동이 묻어났다.

"안 올 줄 알았어요?"

"네, 대개 그러니까요……."

내가 약속을 지킨 게 신기한 듯했다.

"우리 아내가 이걸 꽤 좋아해요."

"아, 그러시군요."

그는 과자 세 봉지를 주었다.

"오천 원에 두 봉지라고 했잖아요."

건네받은 내가 의아해했다.

"하나는 약속 지키신 보너스입니다."

"미안하잖아요."

"아닙니다. 그런 걱정 마세요."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며 내 두 손을 꼭 감싸 쥐는 그를 보니 뭉클했다.

마침 파란불이 들어온 횡단보도를 건너며 뒤돌아보자 그가 손을 흔들었다.

나도 마주 보고 손을 세차게 흔들었다.


-좋은생각 이천십칠년 일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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