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곡밥과 사위
대보름을 앞두고 사위가 물었다.
"오곡밥 안 하세요?" "누가 먹어야 하지. 나 혼자 먹자고 하기도 번거롭고."
"먹고 싶어요. 해 주세요."
요즘 젊은이들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인데, 객지 생활 하다 보니 고향 밥이 그리웠던 걸까.
가족이 된 지 얼마 안 돼 서먹한데도 넉살 좋게 부탁했다.
남편과 나는 오곡밥을 좋아했다.
커다란 솥에 해서 이웃과 나누고, 냉동실에 두었다가 입맛 없을 때 꺼내 먹기도 했다.
그때는 외국산 재료를 썼지만 사위가 해 달라니 좋은 재료에 눈이 갔다.
요리하느라 바쁜 와중에 사위가 왔다.
아들이라면 마음 쓰지 않을 텐데, 사위가 턱밑에서 기다리니 마음이 분주했다.
서둘러 상 차리고 밥 푸려는 순간 사위가 "저 먼저 주세요."라며 남편이 생전에 쓰던 밥그릇을 꺼내 왔다.
예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아무 말 않고 고봉밥을 퍼 주었다.
그런데 자리에 앉자 사위가 조금 전 받아 간 밥그릇을 내 앞에 놓으며
"어머니, 많이 드세요."했다.
"자네 먹으려는 거 아니었어?" "저 사실 오곡밥 안 좋아해요."
남편 병문안 왔을 때 오곡밥 좋아하는 걸 들었다며 어떻게 하면 드시게 할지 궁리했단다.
먼저 달라 한 것도 자식들 주고 남은 거 먹을까 봐 그랬다는 게 아닌가.
가슴이 먹먹했다.
지금껏 늘 식구부터 챙겼는데, 나를 아껴 주는 마음이 예뻤다.
"엄마, 좋은 재료로 만든 오곡밥 드시고 좋겠어요."
딸이 옆에서 생글거리며 놀렸다.
"오냐 좋다. 나를 챙겨 주는 사위가 있어서."
-좋은생각 이천십칠년 이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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