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욕심 때문에
중국 남쪽 지방을 여행할 때 흥미로운 야생 원숭이 잡는 법을 들었다.
상자에 조그만 구멍을 뚫고 그 속에 바나나를 넣어 두기만 하면 된단다.
상자 구멍에 손을 넣어 바나나를 잡은 원숭이는 그걸 쥔 채로 손을 빼려고 애를 쓰는데,
사람이 다가가도 손에 든 걸 놓지 못하다가 잡히고 만단다.
놔 버리고 달아나면 될걸. 어리석기 짝이 없는 원숭이다.
겨우 바나나 하나와 목숨을 바꾸다니.
그놈의 욕심 때문이다.
욕심으로 말하자면 아프리카 진드기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아프리카 오지 여행 중 시골 마을에서 민박을 하면 양이나 염소 등 가축들과 한 공간에서 지내기 십상이다.
그러면 밤새 가축에게 작고 동그란 동물 진드기가 옮아 온몸에 들러붙는데,
그냥 두면 몹시 가려울 뿐 아니라 고열과 두통을 일으키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성냥불로 지져서 떼어 내야 한다.
그냥 손으로 떼면 물린 자리마다 노랗게 곪는다.
문제는 손이 잘 닿지 않는 등에 붙은 놈들인데, 다행히 하루 이틀 지나면 그 독한 놈이 저절로 떨어져 나간다.
피를 빨아 먹을수록 녹두만 한 몸통이 부풀어 오르다가 기어이 물풍선 터지듯 터져 이승을 하직하는 거다.
적당히 먹으면 될걸.
욕심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는 건 중국 원숭이와 다를 바가 없다.
욕심을 기지 못하기는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제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내 남동생이 농부니 농사지을 만한 땅을 소개해 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네가 갑자기 왜 시골 땅이 필요해?"
사연인즉 이랬다.
대기업에 다니던 40대 후반 친척이 재미로 한 주식 단타로 큰돈을 벌었단다.
잘될 때는 한 달에 연봉에 가까운 돈을 벌어 보니 슬슬 욕심이 나기 시작,
주위의 만류에도 회사를 그만두고 몇 대의 컴퓨터를 동시에 보면서 주식에만 전념했단다.
한때는 하루에 강남의 집 한 채 값도 벌었지만 과도한 베팅으로 결국 빈털터리가 되었다.
몇 년 사이에 이 사람의 삶은 말할 수 없이 피폐해지고 10년 연애 끝에 결혼한 금슬 좋던 부부 사이도
완전히 금이 가 별거 상태.
이것저것 다 잊고 시골에 묻혀 '농사나 지으며' 살고 싶다는 거다.
그러면서 내 친구가 하는 말,
"근데 왜 빚까지 내서 땅을 그렇게 많이 사려는 건지 몰라. 하는 김에 특용 작물로 크게 해서 억 단위 매출을 올리고 싶다나? 아직 정신 못 차린 것 같아. 그래도 어쩌냐? 재산 다 털어먹고 저러고 있으니 나라도 도와줘야지."
얘기를 들어 보니 내가 나설 자리가 이닌 것 같았다.
농사 초짜가 연 억 단위 매출을 내는 건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오는 매우 드문 일이라던데…….
무엇보다 10년 전에 귀농한 동생 내외를 보면 농사일이란 '농사나 짓겠냐'는 사람은 얼씬도 하지 말아야 할 '초강도 극한 직업'이다.
아무튼 나는 이 번 일에는 입 다물고 있기로 했다.
전 재산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최근 그놈의 욕심 때문에 '소규모' 피해를 보았다.
발단은 집 근처 대형 마트에서 발견한 알 굵은 딸기 세일이었다.
한 상자에 1만2천 원, 두 상자에 2만 원!
말 그대로 대박 세일이었다.
한 상자도 혼자 저걸 언제 다 먹나 할 만한 양이지만 두 상자를 사면 무려 4천 원이나 이익인데 무엇을 망설일 것인가!
아니나 다를까, 두 번째 상자는 지금 냉장고 안에서 자리만 차지한 채 속절없이 물러 가고 있다.
분명히 저 상자 딸기는 반의 반의 반도 건질 수 없을 거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난 4천 원의 이익이 아니라 1만 원 이상을 손해 본 셈이다.
그것도 매일 물러 터진 딸기만 먹으면서 말이다.
아이고, 억울해라.
《명심보감》 <성신> 편에 이런 구절이 있다.
"큰 집 천 간이 있다 해도 밤에 눕는 곳은 여덟 자 뿐이요.
좋은 땅 만 경이 있다 해도 하루 먹을 것은 두 되 뿐이로다."
아무리 맛 좋은 딸기가 수백 상자 있어도 내가 일주일 먹을 수 있는 양은 한 상자뿐이라는 걸 누가 모르나.
나도 사람이니 욕심 조절이 안 된 거지.
게다가 이번 일을 교훈 삼아 다시 욕심내는 일이 없을 리도 만무하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자.
무른 딸기 덕분에 당분간이라도 다른 일에 욕심을 덜 낸다면, 그게 남는 장사다.
내가 욕심 부리느라 중국 원숭이나 아프리카 진드기처럼 목숨까지 내놓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한비야, 좋은생각 이천십칠년 오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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