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로 교사에서 장학사가 되어 생활한 지 두 달이 지나고, 11월도 중순이 지나 12월로 달리고 있다.
지금까지 적응하는데 시간을 다 보냈는데, 오늘 아침에는 문득 이런 내 생활도 정리해보면 나를 비롯한 누군가에게 어떤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나의 장학사 생활을 기록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찾은 방법과 해법도 함께 공유해 보려고 한다.
일단 오늘은 장학사가 된 소회를 조금 적어 보려 한다.
일단 장학사가 되고 후회를 많이 했다.
'내가 이러려고 장학사가 되었나?' 이런 생각이 정말 순간순간 매일매일 불쑥 불쑥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냥 승진을 하기 위해서 장학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장학사(전문직)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사실 최근에는 버리고 있었는데, 이번 전문직 공문에서 '수업변화' 전문 장학사를 뽑는다는 것에 관심을 가진 것이 지금 내가 교육청에서 이 글을 쓰게 된 결정적 사건이 되었다.
물론 동료 교사의 추천과 가족들의 부추김도 없지 않아 있었다.
뭔가 새로운 도전이고, 지금까지 내가 수업에 대해 가졌던 도전과 열정을 어떤 식으로 풀어낼 수도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일반분야 장학사보다 전문분야 장학사가 가산점도 필요없고, 준비할 것도 별로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와 조건이 되었다.
교육청 주관 연구회를 3년 이상 했다는 자격만 있으면 되었고, 그 근거 서류도 처음에는 준비하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내가 지금껏 한 번도 회장이 아니었기에) 담당 연구사님이 그 서류를 바로 준비해서 내부 메일로 보내주었다.
준비 서류도 끝났다. 거기다 친한 연구사가 자신이 준비한 모든 전문직 준비 노하우를 나에게 전수해 주었다.
내 짐작으로 1:1의 경쟁률을 뚫고 과락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아 현재 중등교육과 장학사가 된 것 같다.
문제는 합격하고, 9월 1일자 발령을 받고부터다.
매일 매일 낯설고 새롭고 모르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의 나의 경험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주무관님들과 선배 장학사님들에게 일일이 다 물어보고 확인해야 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를 지나고 나니 조금은 아주 조금은 뭔가 적응이 되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나는 오늘 아침까지도 적응이 안 되고 있다.
그냥 학생들이나 수업이나 하고, 학교 업무로 행사나 몇 개 하면 되었는데, 이곳에서의 행사나 일은 규모나 중요성이 너무 크다. 그래서 부담스럽다.
그러면서 나는 이런 규모 있고 대외적인 행사나 활동은 부담스러워 하고, 어려워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다.
하지만, 나는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니 어떻게든 일은 해야 한다.
내가 해야할 일은 의미 없거나 그냥 하던 업무일 수 있다.
내가 장학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 그리고 현재 나의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다시 생각하고 정리해서 의미 있는 직장생활을 하고 싶다.
그냥 해야하는 일도 있고, 위에서 하지 못하게 하는 일도 있겠지.
나는 선생님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덜하거나 안 하고, 어떤 것을 더 하거나 보태야 하는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제부터 그런 생각과 실천을 여기에 담아 보려고 한다.
(지금까지 나는 '부엉이쌤'으로 살았는데, 장학사가 되었으니 '시나브로 장학사'로 별칭을 바꾸어 보려 한다. '부엉이쌤'과 '시나브로 장학사'에 담긴 의미는 차차 알려 드리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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