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 74

[훈화] 앞자리로 가세요

12월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미국에 온지 얼마 안됐을 때다. 생일을 앞둔 큰아들에게 맛있는 케이크를 선물하고 싶었다.나는 홀로 자동차를 타고 유명한 빵 집에 갔다.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곳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가게에 동양인은 나뿐이었다. 사람들은 계산대 앞에 길게 줄지어 차례를 기다렸다. 수십 명이 가고 곳 내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직원이 번호를 외치면 손님들이 종이를 보여주며 주문하는 게 아닌가.나만 종이가 없었다. 그제야 알았다. 입구에서 번호표를 뽑고 줄 서야 한다는 걸. '아…… 30분 간 헛수고를 한 걸까.' 그러나 어쩌랴 할 수 없이 다시 입구로가 번호표를 가져왔다. 한데 그 순간 웬 백인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실례합니다." 깜짝 놀라 쳐다 보니 조금 전까지 내..

들썩들썩 춤추는 버스

들썩들썩 춤추는 버스 어릴 적 살던 산골 마을엔 하루 일곱 번만 버스가 다녔다.인근 도시로 가는 길은 비포장인 데다 굽이굽이 산도 넘어야 해 운전하기에 매우 험했다.버스는 늘 붐볐는데, 어시장에 내다 팔 생선 때문에 비린내 가실 날이 없었다.어떤 땐 버스 바닥에 생선이 와르르 쏟아졌다. 그 노선을 혼자 맡았던 이가 바로 오 기사였다.박봉을 받으며 만원 버스를, 더구나 비린내 나는 버스를 몇 해 동안 몰았으니어찌 불만이 없었을까."퍼뜩퍼뜩 타소! 뒤차 빵빵 소리 안 들리는교?","이 자슥아, 니 백 원 덜냈다!"성격 급한 그의 거친 말투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비록 성마른 짜증을 냈지만 오 기사의 책임감은 투철했다.한번은 새벽부터 눈이 펑펑 내렸다.등굣길과 출근길에 나선 이들 모두 발을 동동 굴렀다...

[훈화] 망각을 연습하라

망각을 연습하라 미식축구의 묘미는 치열한 몸싸움과 20~30야드 짧은 거리의 공을 실수로 놓친 선수가 잠시 후에는 먼 거리의 골을 성공시키는 반전에 있다.프로 미식축구 팀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뛰어난 선수 오토 그레이엄에게 어느 날 한 기자가 훌륭한 패스를 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그는 이렇게 답했다. "아주 짧은 기억력입니다.방금 받지 못한 패스를 순간적으로 잊을 수 있는 능력이죠.실수를 잊어버리고 다시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은 신체적 조건이나 공을 차는 기술만큼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하루 두 시간 정도 죄의식에 시달린다고 한다.아침에 가족과 싸운 기억이 불현듯 떠오르거나, 조금 전 회의 시간에 못한 말이 자꾸만 마음속에 메아리친다.계획했던 일을 마무리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