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 74

참관 수업

참관 수업 나이 마흔에 막내딸을 낳았다.직장에 다니느라 어린이집과 놀이방에서 지낸 막내가 훌쩍 자라 초등학교에 들어갔다.처음 학부모 참관 수업이 있던 날이었다.막내는 며칠 전부터 "엄마, 꼭 와야 해요." 하며 다짐을 받았다.한데 마침 직장에 중요한 일이 생겨 가지 못했다.수업이 끝나고 막내가 전화했다."엄마, 왜 안 왔어요? 잊어버렸어요? 오늘 엄마 안 온 아이는 전 혼자였어요. 가위로 색종이를 오리는데 자꾸만 눈물이 났어요. 친구들이 우느냐고 물어서 아니라고 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안아 주니 눈물을 못 참겠더라고요. 그래서 막 울었어요. 이젠 수업 끝났으니 괜찮아요." 막내의 슬픈 목소리에 점심시간 내내 밥도 못 먹고 울었다.막내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 미안했다.그날 오후, 또 한 통의 전화를 받았..

[훈화] 기다릴게요

기다릴게요 해 질 녘, 사내 넷이 모이는 '사인방'에 참석하러 집을 나섰다.소한 추위가 지났는데도 바람이 제법 찼다."한 봉지에 삼천 원, 두 봉지에 오천 원! 맛있는 과자가 한 봉지에……."안경 낀 지긋한 남자가 행상 중이었다.장사할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맛있으면 사 갈게요."내게 과자 한 주먹을 주며 맛보라고 했다.공짜라 그런지 맛있었다.그의 순한 눈빛을 바라보며 말했다."이따 일곱 시쯤 다시 올게요."한 주먹 더 얻은 과자를 먹으며 모임 장소로 향했다."기다릴게요!" 등 뒤에서 그의 말소리가 들렸다. 만나면 개구쟁이 소년이 되는 우리 넷.동태탕을 안주 삼아 쭈그러진 잔에 막걸리를 부어라 마셔라 했다.엉뚱한 친구 덕에 거의 삼 분마다 웃음보가 터졌다.일곱 시가 조금 넘어 모임이 끝났다. 집으로 ..

[훈화] 오곡밥과 사위

오곡밥과 사위 대보름을 앞두고 사위가 물었다."오곡밥 안 하세요?" "누가 먹어야 하지. 나 혼자 먹자고 하기도 번거롭고.""먹고 싶어요. 해 주세요."요즘 젊은이들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인데, 객지 생활 하다 보니 고향 밥이 그리웠던 걸까.가족이 된 지 얼마 안 돼 서먹한데도 넉살 좋게 부탁했다.남편과 나는 오곡밥을 좋아했다.커다란 솥에 해서 이웃과 나누고, 냉동실에 두었다가 입맛 없을 때 꺼내 먹기도 했다.그때는 외국산 재료를 썼지만 사위가 해 달라니 좋은 재료에 눈이 갔다.요리하느라 바쁜 와중에 사위가 왔다.아들이라면 마음 쓰지 않을 텐데, 사위가 턱밑에서 기다리니 마음이 분주했다.서둘러 상 차리고 밥 푸려는 순간 사위가 "저 먼저 주세요."라며 남편이 생전에 쓰던 밥그릇을 꺼내 왔다.예의 없다는 생..

[훈화] 직업 정신

직업 정신 회사 다닐 때의 일이다.어느 날 늦잠 자는 바람에 일곱 시 반에 일어났다.출근 시간은 여덟 시인데 말이다. 나는 급히 씻고 콜택시를 불렀다.허둥지둥 택시에 올라 빨리 가 달라고 부탁했다.그러나 아저씨는 규정 속도를 지키며 운행했다. 한창 출근 시간이라 신호를 두세 번 더 기다려야 했고,그럴수록 요금은 올라갔다. '택시비 많이 받으려고 하는구나.'라는 생각에 부아가 났다.아저씨는 신호 대기 중 전화도 받았다.한데 "지금 손님 모시고 운전 중이니 나중에 전화할게요."라고 짧게 말하곤 끊었다.평소 집에서 회사까지는 택시비 5천 원 정도인데, 그날은 7천8백 원이나 나왔다.나는 속으로 불평하며 만 원을 내밀었다. 그러자 아저씨는 5천 원을 거슬러 주며 말했다. "급하신 마음 잘 압니다. 그렇지만 신호..